철저히 자신 고문 내용 밝히길 꺼려

내가 받은 고문에 대해 밝히면 북한인권운동 문제가 중국인권문제에 묻힐 가능성이 있다.”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 혐의로 체포돼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지난 25일 석방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자신이 중국에서 겪은 고통보다는 지금도 북한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는 주민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그의 ‘열정’이 묻어난다.’내가 중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그 활동을 통해 어떻게 북한인권을 개선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왜 내가 그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부각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김 씨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쏟아진 보도 내용의 대부분은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어떤 고문을 받았느냐’가 중심이었다.’전기고문’을 시작으로 ‘통닭구이’, ‘비둘기고문’ 등 김 씨에 가해진 잔혹한 고문의 방법을 소개하기 바빴다. 같은 기자(?)로서 자극적인 기사로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는 속내가 담겨있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중국에서 ‘무슨 죄인지도 모르게’ 구속돼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정작 정부는 손만 놓고 있었다. 언론이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일이다.하지만 언론이 측근들의 말을 빌려 굳이 스스로 밝히려 하지 않는 일만 ‘억지로’ 보도하는 의도에 물음표가 찍힌다. 정작 김 씨가 자신의 고통을 감추면서까지 알리고 싶었던 그 부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조금 더 키우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가 아닐까 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고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북송된 사람들은 알몸으로 검색을 받는데 보위부원들은 맨손으로 여성들의 생식기에 손을 넣어 가며 숨겨진 돈을 탈취한다. 중국에서 온 임산부에게는 태아 떨구기 고문을 들이 대면서 ‘중국놈의 종자를 배고 온 조국의 배반자’라며 강제 낙태를 시킨다. 정치범 수용소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무릎을 꿇리고 두 손을 뒤로 결박한 채 보위원들이 재미삼아 가래침을 받아먹게 한다. 가래침을 삼키지 않은 경우 하루 종일 매질을 당한다고 한다.#.김영환 씨는 1999년에 작성한 반성문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렸다’고 잘못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대학생 때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강철서신>이란 팸플릿을 썼다. 그의 이 글들은 민족자주나 반미문제에 소극적이었던 기존 학생운동이’반미운동’으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주사파’라는 운동권 최대세력이 탄생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91년에는 강화도에서 북한이 보낸 잠수함을 타고 평양에 몰래 들어가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왔다. 북한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감행한 방북이었지만 오히려 북한의 진실을 깨닫고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안기부에서 ’47일간의 고초’를 당하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신념이 ‘북한의 현실’을 보고 바뀐 것이다.1986년 말 구국학생연맹(구학련)사건으로 김영환 씨는 안기부에 끌려가서 50여일 동안 고초를 겪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 그 당시 그 고통이 얼마나 참기 어려웠던지 김영환 씨는 이듬해 초 서울구치소로 옮겨졌을 때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이라고 했다.”지금은 사상을 완전히 전환하고 북한 민주화에 전념하고 있지만 과거의 잘못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첫째 운동권 전반에 친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다는 점입니다. 둘째 북한의 대남전략에 말려들었고 이는 무책임하고 분별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셋째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남한및 국제사회의 관심이 늦어지도록 하는데 한몫했습니다.” – 1999년 10월 4일 김영환 씨가 쓴 반성문의 요지 중#. 지난 20일 중국 정부의 추방 조치로 귀국한 김영환 씨는 기자들에 “북한은 참혹한 인권 실상과 잔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공안이 나를 조사하면서 고압의 전기봉으로 내 몸을 지졌다. 고통스러웠지만 과거 남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조사에서 가혹행위를 견뎠던 것처럼 이번에도 견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김영환 씨의 ‘고문’을 둘러싼 정부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외면했던 우리들에 대한 반성도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탈북자 한 명 한 명의 ‘증언’에도 지금같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북한주민들은 극한상황의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북한동포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인권실상을 널리 알리고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습니다. 과거 저를 믿고 따르며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새로운 시대흐름에 동참할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 1999년 10월 4일 김영환 씨가 쓴 반성문의 요지 중김영환은 강철 같은, 그러나 정말 맑고 우직한 영혼의 소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