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표 잠수함설은 소설이다.

 
1.천안함 내란역도들이 잠수함이라 칭하는 tod상 흑점은 함수는 조류에 의해 이동을 하고
 
흑점은 조류와 반대방향인 풍향에 의해 함수와는 반대방향으로 이동을 한 부유물이다. 
 
함수와는 반대방향으로 이동을 한 흑점은 제 3부표 잠수함설과 연관이 없다.
 
2. 제 3부표에 잠수함이 침몰하였다고 주장 할 과학적 증거가 전무하다.
 
3. 제 3부표에 잠수함이 침몰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인양기술은 미개하여 세계인의 눈을 속이고
잠수함을 인양 할 기술이 없다. 
 
너희들이 제 3부표에 잠수하여 잠수함이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너희들 모르게 잠수함을 인양하기 위해서는 잠수함 및 선박 인양용 잠수함이 있어야 한다.
 
선박 인양용 잠수함은 구성배의 기술이다.
 
 
[  UDT동지회원들 증언]
 
 
 
 
1.특히 이 부표에 대해 이헌규씨는 “3월 29일날 함수를 한주호 준위가 어탐으로 해서 그 자리를 찾아서 부이를 띄웠다고 하더라구요. 소방호스와 다른 것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함수에서 절단된 그쪽에는 날카롭다, 위험하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이 찾아서 부표를 부이를 띄웠다. 이 곳에서 한 준위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부위에 대해 이씨는 “직접 들어가진 않았다”며 “한 준위가 위험하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실제 함수가 가라앉아 있던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지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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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제 3부표 1차 설치는 고 한주호 준위가 설치하고
제 3부표 2차 설치는 이헌규가 한 것이다.
 
 
ㄴ. 고 한주호 준위가  소방호스와 다른 것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함수에서 절단된 그쪽에는 날카롭다, 위험하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인헌규 한테 말했다.
 
이것은 고 한주호 준위와 이헌규가 수중에서 작업한 물체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
 
천안함이 4등분 되었다고 분류를 하면
 
함수
 
함미
 
가스터빈실 바닥판
 
연돌 & 디미스트
 
이렇게 4등분 되었다.
 
이 중에 함수에서 절단 된 그쪽에는 날카롭고 위험하다고 한준위가 설명한 물체와 일치하는 것은
연돌 & 디미스트 뿐이다.
연돌 & 디미스트가 설치 된 위치가 함수와 함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함수에서 절단 된 그쪽에는 날카롭고 위험하다는 것은
함미에서 절단 된 그쪽에는 날카롭고 위험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ㄷ.한준위의 수중작업 중 함수 또는 연돌이 조류 및 내부의 에어포켓으로 인해 움직인 것인가?
이것이 부표가 떨어져나가고 한준위 사망에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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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UDT동지회원인 이헌규씨는 자신이 제3의 부표 아래로 잠수해 목격한 것이 “함수”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모습에 대해서는 “낡은 와이어가 있어서, 와이어 2개에 부표를 띄워나서 로프 연결을 해치문에 걸린 것으로 (연결)해서 해치문을 열고, 김진호(함께 작업한 UDT동지회원)는 로프를 잡고 있고, 나는 해치문 안에 들어가서 탐색을 하고 나왔다. (그 크기는) 한 5m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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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크기는) 한 5m 정도 된다는 설명은
 
ㄱ.연돌의 높이와 일치한다.
전시 된 연돌 & 디미스트의 옆에 설치 된 비계 파이프 1본의 길이가 6m이기 때문에
연돌과 비계 파이프 높이를 비교한 결과이다.
 
이헌규와 김진호가 수중작업을 한 물체는 연돌 & 디미스트 이다.
 
천안함이 4등분 되었다고 분류를 하면
 
함수
 
함미
 
가스터빈실 바닥판
 
연돌 & 디미스트
 
이렇게 4등분 되었다.
 
이 중에서 크기가  (그 크기는) 한 5m 정도 되는 물체는 연돌 & 디미스트 뿐이다.
 
ㄴ.기계 전기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와이어라고 하는 것은 철선을 꼬아서 만든 줄을 와이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다.
 
ㄷ. 와이어라고 말한 것이 철사 또는 반생을 말한 것인지 조사가 필요하다.
 
ㄹ. 왜 낡은 와이어라고 했는지 설명이 없다.
또한 와이어를 수거한 위치에 대한 설명이 없다.
와이어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상 와이어의 길이는 통상적으로 2m 이상인 것이 보통이다.
수거한 와이어의 길이와 두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ㅁ. 와이어 2개에 부표를 띄웠다고 말하는데 와이어가 하나가 아닌 2개에 로프를 결속하는 것은
어렵다 왜 와이어 2개로 결합을 한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다.
 
ㅂ.와이어가 아닌 철사 또는 반생을 사용한 경우 이것이 한준위의 잠수장비에 손상을 발생시킨 것인지
조사가 필요하다.
 
 
ㅅ.함미에서 연돌 & 디미스트가 수중에서 사라진 시점에 대한 관련자에 대하여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필요하다.
사라진 시점에 대하여 주둥이를 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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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황현택 기자의 진술서에 따르면
 
2010년 4월 6일 저녁 한 UDT 대원은
 
황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함수의 길이가 한 60여m 되는데,
 
함수가 수심 20여m 이하에 침몰돼 있고,
 
시계도 30㎝가 채 되지 않아서
 
부표에서 색인줄을 잡고 들어가서
 
 그냥 바로 눈앞에 시야에 있는 물체들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함수가 ‘제 3 부표’ 지점 수심 20여m 이하에 침몰돼 있고 길이가 60여m라는 UDT 대원의 통화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당시 UDT 대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수심 20여m 이하는 용트림 바위 등 해변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천안함 함수 길이가 47.2m이므로 60여m와는 차이가 커
 
천안함 함수가 아닌 다른 선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상철 대표는 “천안함에는 그런 해치문과 부표를 매달았다는 와이어가 없다”며 “물체의 길이도 13미터 정도 차이가 나고 침몰 위치도 다르기 때문에 천안함 함수와는 다른 물체일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제 3의 부표 밑에 가라앉은 물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처리됐는지 앞으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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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천안함이 4등분 되었다고 분류를 하면
 
함수
 
함미
 
가스터빈실 바닥판
 
연돌 & 디미스트
 
이렇게 4등분 되었다.
 
이 중에서 침몰위치를 고려하여 함미를 제외하면 길이가 한 60여m 되는 물체는 함수 뿐이다.
 
2010년 4월 6일 저녁 한 UDT 대원은
 
황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함수의 길이가 한 60여m 되는데,
 
함수가 수심 20여m 이하에 침몰돼 있고,
 
시계도 30㎝가 채 되지 않아서
 
부표에서 색인줄을 잡고 들어가서
 
 그냥 바로 눈앞에 시야에 있는 물체들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똥과 된장의 구별이 불가능한 이런 장소에서
 
천안함 함수 길이가 47.2m이므로 60여m와는 차이가 커다는 신상철의 주장은 정당한 것인가? !
 
나는 땡깡이라고 판단한다.
 
 
 
고 한주호 준위는 함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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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UDT동지회원들은 한 준위가 작업하다가 사망한 장소가 함수 침몰 지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지목한 실제 위치는 함수와 함미 침몰 지점 사이(용트림 전망대 바로 앞 지점)인 ‘제3의 부표’였다.
 
 
이들은 함수와 함미 인양을 위한 해상크레인이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함수와 함미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이들이 제3의 부표 지점을 함수 위치라고 지목한 것은 고 한주호 준위가 그렇게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함수와 함미 위치의 경우 “용트림 전망대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며 망원렌즈를 통해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황현택 기자가 법정 제출 서면 증언에서 밝히기도 했다.
 
 
천안함 함수와 함미는 사고 다음날인 3월 28일 저녁 8시~10시 사이에 모두 발견하고 제1부표(함미)와제2부표(함수)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3월29일 한주호 준위가 어선을 빌려 어군탐지기를 작동하여 제3의 물체를 찾아 그곳에 또하나의 부표를 설치합니다. 이름하여 ‘제3의 부표’입니다. 라고 신상철은 말한다.
 
사고후 사흘이 지난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어선을 빌려서 어선의 어탐을 이용하여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부표를 설치합니다. 3월 29일은 바로 전날, 3월 28일 저녁 함수(20:00)와 함미(22:00)를 발견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 다음 날입니다. 즉,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입니다.  라고 신상철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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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사고후 사흘이 지난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어선을 빌려서 어선의 어탐을 이용하여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부표를 설치합니다. 3월 29일은 바로 전날, 3월 28일 저녁 함수(20:00)와 함미(22:00)를 발견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 다음 날입니다. 즉,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입니다.  라고 신상철은 말한다.
 
  2010년 3월 29일 : 함미 연돌의 깨진 틈으로 공기 주입 시작. 
 2010년 3월 30일 : 용트림 바위 앞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34][35]
 
해군 관계자는 30일 UDT 한주호 준위가 오후 수색작업 중 의식을 잃고
오후 4시 30분에 숨졌다고 하였다.
 
 
 
 
해난 구조대(ssu)는 29일 오후 8시 14분부터 13분 동안 함미 연돌의 깨진 부분으로
산소통 1개 분량의 공기를 공급했다.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내부폭발시 함미, 함수 및 가스터빈실 바닥판으로 분리가 되었고 
함미는 수직에 가깝게 침몰하였다.
 
이 때  연돌 & 디미스트는 수중의 바닥에 충돌하여 지진파를 발생시켰다. 
 
군은 산소통 1개로 넣을 수 있는 공기의 양은 3000[L]라고 하였다.
이것은 3 [t]의 부력을 연돌 & 디미스트에 발생시켰다.
 
이것이 연돌 & 디미스트가 함미에서 떨어져나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에어포켓이 형성 된 연돌 & 디미스트 29일에 떨어져 이동을 하였다면 
조류에 의해 제 3부표를 포함한 함수의 침몰수역 및 다른 수역으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은
연돌 & 디미스트다.
 
 
 
 
 
 
ㄴ.2010 년 3월 30일 오후 3시20분쯤 서해 백령도 해상에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구조작업을 진행 중인 군은 함미 부분 왼쪽 통로문을 열고 공기를 집중 주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해난구조대 잠수사들이 함미 쪽으로 접근해 조금 열린 왼쪽 통로문을 더 열어, 실린더 2개 통 분량의 6천ℓ의 공기를 주입했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 3월 31일에도 기상 여건에 따라 이르면 새벽 3시부터 실종자들이 몰려 있는 함미 부분의 공기 주입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이 때 연돌 & 디미스트에 공기주입을 중단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고
연돌 & 디미스트는 인양시 함미에 없었다.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은
연돌 & 디미스트다.
 
 
ㄷ. 천안함이 가스터빈실 내부폭발이 발생한 지점에서 제 3부표까지 조류에 의해 이동이 가능하고
에어포켓이 형성 된 함수가 일정 지점에만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조류의 방향에 변동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에어포켓이 형성 된 함수의 위치는 고정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고 한주호 준위는
 
 
연돌 & 디미스트 수색 중 사망을 한 것인가?
 
아니면 함수 수색 중 사망을 한 것인가?
 
한주호 준위는 누구와 작업을 한 것인가?
 
군은 주둥이 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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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3월 29일 함수를 고 한주호 준위가 어탐으로 해서 제 3부표 설치하였다고 이씨 진술함 
 
문제는 이 곳이 함수(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제1부표’)와 함미(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측 능선 지점-‘제2부표’)의 중간 지점이자 용트림 바위에 가까운 지점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이 철수한 뒤인 4월 5일 함미와 함수를 인양하기 위해 투입된 해상크레인의 위치가 함수와 함미 침몰 지점으로, UDT동지회가 제3의 부표라고 지목한 곳에는 해상크레인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1.특히 이 부표에 대해 이헌규씨는 “3월 29일날 함수를 한주호 준위가 어탐으로 해서 그 자리를 찾아서 부이를 띄웠다고 하더라구요. 소방호스와 다른 것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함수에서 절단된 그쪽에는 날카롭다, 위험하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2.이씨는 “자신이 찾아서 부표를 부이를 띄웠다. 이 곳에서 한 준위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부위에 대해 이씨는 “직접 들어가진 않았다”며 “한 준위가 위험하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실제 함수가 가라앉아 있던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지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3.이씨는 한 준위로부터 ‘함수’라며 전해들은 이 ‘제3의 부표’와 관련해 한 준위 외에 군 당국으로부터는 아무런 설명을 들은 바 없다고 전했다.
 
4.천안함 재판에 이른바 제3의 부표 지점에서 작업을 했던 이헌규 전 UDT 동지회장이 법정에서 당시 잠수한 뒤 연 문이 완전히 제껴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두고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천안함 좌현의 선실 문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황현택 KBS 기자는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UDT동지회원들이 ‘함수’라고 주장했는데도 ‘제3의 부표’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UDT 동지회원들이 지목한 함수는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함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며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제3의 부표’라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제3의 부표 관련 보도를 한 취지에 대해 황 기자는 “당시 ‘제3의 부표’ 위치에서 UDT 동지회가 함수 수색에 나섰고, 별도의 장소에서 소형 크레인이 함수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면 결국, 함수 위치가 2개인 셈이 된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군은 일관되게 ‘천안함이 두동강 났다’고 주장했고, 당시 공개된 TOD 영상에서도 사고 직후 천안함이 두동강 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황 기자는 “당시 취재진은 승조원 구조 직후 천안함이 2차 폭발에 의해 세조각 났을 가능성부터, ‘제3의 부표’에 함수나 함미가 아닌 ‘제3의 물제’가 침몰해있을 가능성까지 가정아래 둔 바 있다”고 답했다.
한편, 당시 4월 6일 오후 2시 ‘제3의 부표’ 인근에서 헬기가 등장해 물속에서 2m 가량의 긴 물체를 건져 올린 상황에 대해 황 기자는 “해군 헬기 한 척이 함미와 함수 부분 가운데 해역에서 정지 비행을 했다”며 “바다 위에선 군인들이 고무보트 위에서 무언가를 헬기로 실어 올렸는데 긴 막대기 모양의 물체 2개를 하나씩 차례로 올렸고, 마지막에는 모터 보트에서 잠수부 한 명이 물에 뛰어내린 뒤 헬기에서 나온 줄을 잡고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황 기자는 “이는 KBS 촬영 포인트 3곳(중계카메라, 용트림바위, 연화리)에서 동시 촬영했고, KBS 외에 인근 언덕에서 방송 4사가 모두 촬영한 가운데 진행됐다”고 밝혔다.
앞서 KBS는 지난 2010년 4월 7일 <뉴스9>에서 ‘제3의 부표’ 관련 리포트를 두 건을 방송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지만, 방송직후 취재에 응했던 UDT동지회원들이 위치를 착각했다고 번복해 결국 KBS 홈페이지에서도 기사를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황현택 기자는 KBS가 UDT 동지회원들에게 침몰한 함수 함미 수중 촬영을 부탁하기 위해 타사와 달리 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접촉하면서 이들과 숙식까지 함께 하는등 상당한 신뢰 관계를 쌓아왔고, UDT 동지회원들도 자신들의 활동을 KBS에 줄곧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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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0년 3월 29일 : 함미 연돌의 깨진 틈으로 공기 주입 시작. 
해난 구조대(ssu)는 29일 오후 8시 14분부터 13분 동안 함미 연돌의 깨진 부분으로
산소통 1개 분량의 공기를 공급했다.
 
 
 
군은 산소통 1개로 넣을 수 있는 공기의 양은 3000[L]라고 하였다.
이것은 3 [t]의 부력을 디미스트를 포함한 연돌에 발생시킨다.
 
이것은 디미스트를 포함한 연돌의 수중에서 이동을시키는 역할을 한다.
[3] 2010년 3월 30일 : 용트림 바위 앞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34][35] 
 
해군 관계자는 30일 UDT 한주호 준위가 오후 수색작업 중 의식을 잃고
오후 4시 30분에 숨졌다고 하였다.
 
 
 
 
[4] 2010 년 3월 30일 오후 3시20분쯤 서해 백령도 해상에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구조작업을 진행 중인 군은 함미 부분 왼쪽 통로문을 열고 공기를 집중 주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해난구조대 잠수사들이 함미 쪽으로 접근해 조금 열린 왼쪽 통로문을 더 열어, 실린더 2개 통 분량의 6천ℓ의 공기를 주입했다고 밝혔습니다.

[5] 2010년 3월 31일에도 기상 여건에 따라 이르면 새벽 3시부터 실종자들이 몰려 있는 함미 부분의 공기 주입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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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미에서 이탈한 연돌 & 디미스트의 행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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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10년 3월 31일 UDT동지회원들 현장에서 철수함
[7]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36][8] 2010년 4월 2일  UDT동지회원들 백령도로 집합함 
 
[9] 2010년 4월 3일 10시  UDT동지회원들 백령도 용트림 전망대에서 제 3부표를 바라보며 한 준위 추모제를 열었다.
 
 
[10]2010년 4월 3일 17시 46분에 SSU 잠수사 2명이 디미스트를 포함한 연돌부분이 함미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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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돌 & 디미스트가 함미에서 언제 사라졌는지 함구하고 있다.
 
또한 연돌 & 디미스트의 인양 위치 또한 함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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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10년 4월 5일 함미와 함수를 인양하기 위해 해상크레인 투입
 
 
[12] 2010년 4월 7일 kbs 제 3부표 보도함
 
1.천안함 수색작업을 하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가 함미와 함수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사망했다는 이른바 ‘제3의 부표’ 의혹에 대해 당시 이를 보도했다 기사를 삭제했던 KBS 취재진이 ‘제3의 부표’를 설명한 UDT 동지회원과의 취재녹취록을 법원에 제출했다.
 
UDT 동지회원들은 녹취록에서 군 당국이 밝힌 함수나 함미가 아닌 용트림바위 앞 1km 이내의 위치에서 한주호 준위가 부표(제3의 부표)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작업하다 숨졌다고 증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KBS 취재진은 당시 제3의 부표에 함수나 함미가 아닌 ‘제3의 물체’가 침몰해있을 가능성까지 가정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2.정철 UDT 대전지회장은 지난 2010년 4월 6일 KBS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한주호 준위가 자신이 세운 용트림 바위 앞 부표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정 지회장은 이곳을 함수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함수의 위치는 이 곳으로부터 3~4km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고, 해상크레인도 함께 있었다.
제3의 부표 위치에 대해 정 지회장은 용트림바위 앞 단상에서 “1km 안 됐죠. 너무 가깝게 보이죠. UDT 현역병들이 고무보트 타고 뺑뺑 돌고 그랬잖아요”라고 말한 것으로 녹취돼있었다.
 
 
3. UDT동지회원인 이헌규씨는 자신이 제3의 부표 아래로 잠수해 목격한 것이 “함수”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모습에 대해서는 “낡은 와이어가 있어서, 와이어 2개에 부표를 띄워나서 로프 연결을 해치문에 걸린 것으로 (연결)해서 해치문을 열고, 김진호(함께 작업한 UDT동지회원)는 로프를 잡고 있고, 나는 해치문 안에 들어가서 탐색을 하고 나왔다. (그 크기는) 한 5m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4.이와 함께 신상철 대표는 증인채택 4년 만인 지난 22일 법정에 출석한 이헌규 전 UDT동지회장의 증언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자신이 구조작업을 위해 바닷속에 들어가 연 해치의 생김새에 대해 신 대표가 제시한 잠수함 해치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 해치 모양은 모두 둥근 형태였다. 이 전 회장은 두 팔 벌려 한바퀴 돌만한 좁은 공간이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검사와 재판장이 재차 확인 질문을 하자 둥근 모양인지는 모르겠다고 번복했다. 
신 대표는 “천안함 좌현 출입구에는 둥근 해치로 출입할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천안함은 우현으로 90도 누워있었으므로 좌현 선실쪽 출입구가 유일한 통로였으며 모두 대형 사각 해치였다”고 설명했다.
 
 
5. 또한 이 전 회장이 해치를 열었을 때 해치가 완전히 180도 제껴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신 대표는 “거주구인 선실 내부의 목재 출입문을 해치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며 “외부 혹은 수밀격벽에 설치돼 완벽히 밀폐(tight)되는 금속제 구조의 출입문을 해치(hatch)라 한다. 해치 자체는 견고하고 무거우며 강력한 개폐장치가 달려 있다. 천안함 좌현 선실의 해치는 모두 대형 사각 해치로 열었을 때 안전이 보장되도록 완전히 제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6. 이와 달리 잠수함의 해치에 대해 신 대표는 “완전히 제껴지지 않도록 설계돼 있는데, 그 이유는 완전히 제껴질 경우 해치 무게로 인해 하부로 내려가면서 해치를 닫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하부로 내려가면서 해치를 닫을 수 있도록 통상 120도 정도의 기울기에서 멈추도록 설계돼 있으며 스스로 닫히지 않도록 시건장치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따라서 ‘한 손으로 열었고, 완전히 제껴지지 않았다’는 이헌규 전 회장 증언은 그가 천안함이 아닌, 다른 구조물 또는 그런 해치를 가진 수중함선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7.황 기자는 “우리는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한 일은 없다”며 “리포트 내용이 해군이 지목한 함수 지점과, 현장 수색 작업에 나선 UDT 동지회원들이 지목한 함수 위치가 충돌하고 있어 이에 대한 해군의 정확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판부에 “당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정보의 비대칭이 매우 심각했고, 그런 상황에서 현장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 내용은 그나마 진실에 접근해 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며 “여러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이뤄진 합리적 의심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그 진의를 따지는 게 바람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8. UDT동지회원들은 한 준위가 작업하다가 사망한 장소가 함수 침몰 지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지목한 실제 위치는 함수와 함미 침몰 지점 사이(용트림 전망대 바로 앞 지점)인 ‘제3의 부표’였다.
 
 
이들은 함수와 함미 인양을 위한 해상크레인이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함수와 함미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으며, 이들이 제3의 부표 지점을 함수 위치라고 지목한 것은 고 한주호 준위가 그렇게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함수와 함미 위치의 경우 “용트림 전망대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며 망원렌즈를 통해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황현택 기자가 법정 제출 서면 증언에서 밝히기도 했다.
 
 
 
고 한 준위가 용트림 전망대 앞바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UDT동지회원들의 당시 증언(KBS 취재 당시)이 담긴 추모제 영상과 달리 함수 함미 인양을 위한 해상크레인이 들어온 위치가 달랐던 점에 착안해 KBS 취재팀이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 KBS 제작진의 증언이다.
 
 
9. 제3의 부표 위치에서 작업한 헬기와 관련해 미 제7함대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에 유사한 헬기와 수송장면이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신 대표는 “한주호 준위가 사고를 당했을 때 미 함선의 산소탱크를 이용한 것 외에 미 해군이 천안함 관련 구조작업을 도왔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며 “그들의 작업이 천안함 사고와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사고 원인규명의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BS는 당시 뉴스에서 제3의 부표 장소에 대해 “이 곳은 어제 해군이 길이 2미터의 파편 2개를 건져 올린 곳이기도 하다”며 “이 파편을 실은 해군 헬기는 백령도나 인근 바다에 떠 있는 독도함이 아닌 남쪽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13]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39][14]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42][15]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인양되었다.[16]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44] 
[17] 2010년 4월 23일 연돌 & 디미스트 인양함
[18] 2010년 4월 24일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 29일 만에 인양되었다.[19]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침몰로 사망한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됨. 
 
[20] 2010년 5월 1일 천안함 침몰해역에서, 유실됐던 하푼 미사일 발사대를 인양
 
 
[21] 2010년 5월 2일에는 함수가 침몰한 지역에서 마스트도 인양
 
또한 하푼 미사일 발사대 및 마스트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인양을 하였다는 보도도 있다. 
 
 
[22] 2010년 5월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9차 회의
 
1.박승규 당시 KBS 사회팀장은 2010년 5월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9차 회의에 출석해 “추모제를 용트림 바위에서 UDT 동지회가 가졌는데, 용트림 바위 앞에 약 2km 정도 떨어진 빨간 부표가 있는 곳에서 ‘저기가 고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곳’이라면서 추모제를 지냈으며,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저 부표가 한 준위가 발견해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 얘기를 우리가 녹취를 했다”며 “그때 기자들이 조금 의문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4월 5일 크레인이 들어와 함미의 위치와 함수의 위치 두 곳에 설치됐는데 UDT 동지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용트림 바위 앞 부표가 설치된 곳에는 크레인이 안 왔다”며 “그래서 기자들이 추모제를 지낸 UDT 회원들을 상대로 ‘고 한주호 준위 사망한 곳이 저기이고, 함수의 위치가 있는 곳은 크레인 위치가 있는 곳과 다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녹취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UDT 회원들은 용트림 바위 앞에 있는 부표 위치를 아마 함수 위치로 알고 진술을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박 팀장은 “현장에 작업을 했던 UDT 동지회원들은 ‘제3의 부표’가 고 한주호 준위가 작업하고, 사망한 지점인 곳이고, 거기에는 구조물이 있는 것 같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리포트를 하게 된 과정”이라고 증언했다.
 
 
2.그 회의에서 함께 출석한 황현택 KBS 기자는 “(추모제를 지낸지) 이틀 있다 크레인이 들어오고 나서, 크레인이 들어왔을 때 UDT 동지회원 분들은 이미 백령도를 떠났다”며 “‘크레인이 왜 저희가 본 적이 없는, 기존에 함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지점에 들어와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 것”이라고 증언했다. 황 기자는 “실제로 본인이 직접 들어가서 함수를 봤다고 하는 분들한테 전화를 해 저한테 화를 낼 정도로 확인과 확인을 거듭해 보도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황 기자는 “제가 보기에도 백령도 앞에 있는 부표와 군이 발표한, 함수로 확인된 위치에 서 있는 부표와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