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팔 사람이 아파트를 산다?

고령화로 증가하는 60대 이상이 주택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파트 구입자 중 60세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7만1254명)보다 57.2% 급증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구입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연령층은 55~59세로, 58.1%가 증가했다.

이 같은 통계는 60대 이상 연령층은 노후생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갖고 있던 주택을 대거 매도해 주택가격을 끌어내린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작년 말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노인층이 빚을 갚고 생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아파트 등 부동산을 팔아치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아파트 구입자 수 증가 폭(57%)은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구입자 수 평균 증가폭(17%)보다 3.3배 정도 많다. 반면 같은 기간 29세 이하, 30~34세의 아파트 구입 건수는 각각 16.5%, 17% 줄어들었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주택가격 상승폭에 비해 젊은 층의 소득 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영향이 크다.

 
 전체 아파트 구입자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늘었다. 5년 전에는 전체 아파트 구입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10.5%였지만, 작년에는 14.1%로 증가했다. 55~59세 그룹의 비중도 7.4%에서 10%로 증가했다. 한국감정원 보고서는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2011~2015년 아파트 실거래가 등록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연구원장은 “이번 조사 결과 60대가 넘어도 주택시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령화가 주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60대 이상 연령층이 주택 시장에서 강력한 구매층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금에 여유 있는 노년층이 재테크 차원에서 주택투자를 하고 있다.

통계청의 기대 여명(나이별로 남아 있는 평균 생존 기간) 조사에 따르면 60세 남성은 22년, 여성은 27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아파트도 월세 비중이 높아져, ‘여유’가 있는 60대 이상 그룹이 아파트를 ‘수익형’ 투자상품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며 “게다가 현재 60~70대 초반 연령층은 1980~90년대 집값 급등기에 부동산 투자로 자본을 축적한 세대여서 부동산 투자 의욕이 강하다”고 말했다. 다만 60대 이상 고연령층 내부에서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주거 사각지대에 놓이는 그룹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하는 미국·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중·대형주택에서 살다가 자녀들이 출가를 하고, 은퇴하면 소형 주택으로 갈아타는 수요도 활발하다.

기존 주택시장뿐 아니라 신규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60대 이상 연령층이 강력한 구매 계층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는 서울·경기도권에선 청약자 중 60대 이상이 13~14%, 지방은 7~9% 수준이다. 하지만 분양 현장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실제로는 분양 시장에서 60대 이상의 ‘영향력’은 훨씬 강력하다고 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인 A사의 아파트 마케팅 담당 임원은 “30대 초~40대 계약자들이 모델하우스를 찾을 때는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부모와 동행한다”며 “이런 경우 부모가 대부분 집값의 10% 안팎 계약금과 1~2차 중도금을 대신 내준다”고 말했다. 특히 소형 아파트의 분양 가격도 10억원이 넘는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 계약자 명의는 30~40대 중반이라고 해도 실제로 이들의 전주(錢主)는 60대 이상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건설사들은 보고 있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주택연금’도 60대 이상 연령층의 주택 구입을 촉진하고 있다. 주택연금은 정부가 집을 담보로 매달 일정 수준의 돈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보장하는 ‘역모기지형’ 금융 상품이다. 우리나라 주택연금은 연금 지급 요건이 일본·미국보다 훨씬 유리하다. 채미옥 감정원 연구원장은 “주택연금이 60대 이상이 부동산 시장에서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