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샐러리맨 – 제13장 (7)

친위대장 이철희가 휴대폰으로 보고를 받으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 그럴 수가… 전멸이라니?”

치명적인 독가스를 터뜨렸는데도 서정과 왕위안이 생존하다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철희는 용병대원 일곱의 희생으로 두 사람을 충분히 제거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철희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잇! 그렇다면 특무대로 이판사판 결판을 내고야 말겠다.” 

특무대(特務隊)는 친위대 휘하의 조직으로써, 선제공격에 특화된 정예요원 12 명으로 구성된 최강 집단이다.

이철희는 특무대 전원을 곧바로 후미진 건물로 은밀하게 소집한 가운데,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목표는 용병대원 일곱을 전멸시킬 정도로 강하다. 우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철희의 말에 특무대원 모두의 안색이 굳어졌다. 분위기가 사뭇 숙연해졌다. 

이철희가 한 사람씩 특무대원 모두의 얼굴을 주시하면서 뭔가 불어넣으려고 애쓰고 있는 듯했다. 

그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우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목표를 제거해야 한다. 나를 따르겠는가!” 

이철희는 목표라는 단어로 마법을 부려 특무대원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목표라는 동아줄로 꽁꽁 묶으면서도 실상 특무대원들의 머리 위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려는 이철희의 속내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특무대원들은 가슴을 부풀리며 일제히 손을 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그들은 팬터마임을 하듯 말을 극도로 아꼈는데, 그게 그들의 일상사였던 것이다. 

설사 목이 터져라고 그곳에서 함성을 터뜨렸다고 해도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었다. 그만큼 방음이 철저한 곳이었다.

죽음의 공포 따위는 이미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밤의 대통령 일가를 향한 특무대원들의 충성심은 그 정도로 강했다. 

특무대원들의 충성심을 확인한 이철희는 즉시 특무대와 함께 떠났다. 그는 자신의 부친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하지만 밤의 대통령 이별종에게 친위대 및 휘하 조직에 관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었다. 1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별종에게 보고되었다. 

“아니, 이렇게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지다니! 그토록 고심했건만…”

좀처럼 놀라지 않던 이별종이었는데, 그가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오장이 뒤집히듯 정말 이상한 증상이었다. 그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좀처럼 허탈한 심정을 가누지 못했고, 심지어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들 정도로 막막하기만 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볼 때, 이철희는 구제 불능이었다.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교활하고 포악한 것처럼 보였다.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는 냉혈동물처럼 차가운 피를 지닌 채 태어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지 못하게 예방하려고 서정에게 이서현의 경호를 부탁했던 것인데, 오히려 그게 이철희의 질투심을 부채질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실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 이상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예. 회장님.”

“철희가 향한 곳은?”

“서정 일행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상후의 눈빛이 마치 동정하듯이 충동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약간의 두려움도 깔려 있음을 이별종은 놓치지 않았다. 

(내 마음 탓이겠지? 저 사람이 그럴 리가 없잖은가. 평생을 나와 함께 한 사람인데…)

“으음…”

잠시 고민하던 이별종이 다시 말했다.

“지금 당장 친위대 전원을 소집하게.”

“예.”

대답과 함께 몸을 돌린 비서실장이었다. 그런데 이별종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상후의 등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인솔할 테니 그리 알고.” 

이상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괜히 거북스럽고 몸이 위축되는 느낌이 엄습했다. 이별종의 목소리에서 우월감 같은 오만함이 묻어났기도 했지만, 그건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이철희에 이어서 이별종까지 쫓아간다는 것은 이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정이 그렇게도 중요했단 말인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정도라니…)

이상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쾅!

두꺼운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탁자가 부서질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손바닥으로 굉음을 만들어낸 사람은 왕위안의 외조부로 알려진 화교 노인이었다. 

온화했던 얼굴이 분노로 인하여 벌겋게 달아올랐고, 독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두 눈에서는 시퍼런 기광(奇光)이 흘러나왔다. 

국내 화교인들이 한결같이 우러러보는 그는 현재 화교협회장이며 소림사의 한국 분원장을 맡고 있는데, 갑작스런 소식에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왕위안의 외조부일 때와 화교협회장이자 소림사의 한국 분원장일 때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기 마련이다. 

왕위안의 외조부로서 자신의 외손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들에게 습격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독가스 테러까지 당할 뻔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화교 노인의 주변에는 몇몇 화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의 앞에는 흥신소 직원 진돗개가 서 있었다. 

그가 직접 화교 노인에게 소식을 전한 것은 서정과 왕위안에 대한 습격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망측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해 보게. 몇 명이 습격을 했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일곱이었는데 마치 자살 특공대처럼 보였습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그 아이에게 무슨 원한을 갖고 있기에 그토록 무지막지한 공격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제 능력 밖이라서…”

화교 노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몇몇 화교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뿌드득 이를 갈며 은연중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좋은 지도자란 조건 없이 수하(手下)의 입장을 이해한 다음, 가능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화교 노인은 좋은 지도자가 틀림없었다. 

“그러면 남들이 우리를 겁쟁이라고 놀릴 걸세. 청수(淸秀)!”

청수를 부르자 화교 노인 옆에 서 있던 중년 하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협회장님.”

“평정대(平定隊)를 통솔하여 왕위안 일행을 돕도록 하게.”

화교 노인이 청수에게 평정대 통솔권을 부여하자 다른 화교들의 표정이 크게 달라졌다. 평정대는 소림사에서 무예를 수련한 무술인 집단으로서 지난 삼십여 년 간 단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정대 전체를 통솔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청수가 몹시 의아하다는 듯 그늘진 얼굴이 되어 갔다. 누군가를 통솔한다는 것, 누군가보다 높은 곳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번거로운 일인지 청수는 소림사에서 수련할 때에 충분히 체득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청수가 되물었던 것은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평정대 전체를 통솔하기 싫다는 완곡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화교 노인 또한 그런 의미로 이해했지만, 청수의 뜻에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네. 자네가 이끌도록 하게.”

화교 노인이 평정대에 관한 통솔권을 청수에게 부여했음을 다른 화교들 앞에서 재차 강조했다는 것은 곧 자신의 후계자로 청수를 지목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말을 마친 화교 노인의 얼굴은 귀밑까지 벌겋게 상기된 상태였다. 자신의 무안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청수는 화교 노인의 고심을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화교 노인의 말투에 드러난 강한 결심을 헤아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청수는 화교 노인의 뜻에 따라 무거운 굴레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평정대를 통솔하는 책임감보다는 누군가의 통솔을 따르는 편안함이 좋았음에도 청수는 고독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잠시 후, 화교협회 건물 앞에 이십여 명의 일류급 고수들이 모였다. 다들 청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아무런 흔들림 없는 눈빛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들의 눈에 협회장은 한낱 껄끄러운 존재로 인식될 뿐이었던 반면에, 오히려 청수는 통솔력까지 구비한 젊은 지도자로서 더 매료되어 있었다. 

박제된 관습적 권위에 대해서 코웃음을 칠 만큼 평정대 모두는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었고, 바로 그런 측면에서 청수는 그들의 요구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청수는 그들에게 협회장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청수가 이끄는 평정대 모두가 신속하게 대형버스를 타고 화교협회를 떠났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돗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음모에 의해서 크나큰 변고가 발생할 것 같은데… 보고부터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급히 차를 몰고 대형버스 뒤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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